“염전, 단순한 소금밭을 넘어 인류의 자산이다ʼ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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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염전, 단순한 소금밭을 넘어 인류의 자산이다ʼʼ

(사)한국해양환경 안전협회 서부권 회장

(사)한국해양환경 안전협회 서부권 회장
[정보신문] 소금은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해온 가장 원초적인 자원이다.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농업을 시작한 이후,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소금이었다. 소금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식품을 저장하고 발효시키며 생명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류는 바다에서, 광산에서, 염전에서 소금을 얻어왔고, 그 과정은 곧 문명의 발자취이자 생존의 역사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염전은 단순한 산업 시설을 넘어 인류 생활의 터전이자 문화적 유산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삼국시대 이래 소금은 국가 재정과 직결된 전략 자원이었다. 고려와 조선은 소금에 세금을 매겨 국가 재정을 확보했으며, 특정 지역의 염전은 왕실과 국가의 직접 관리 대상이 되었다. ‘소금길’을 따라 전국으로 퍼져 나간 천일염은 백성의 밥상뿐 아니라, 김치·된장·간장·젓갈 등 한국 고유의 발효 문화를 가능케 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랑하는 한식의 뿌리 역시 염전에서 비롯된 셈이다. 염전은 곧 한국인의 식탁과 직결된 문화적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랫동안 염전의 가치를 과소평가해 왔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염전이 사라졌다. 외국산 값싼 정제염이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국내 천일염 산업은 급격히 위축됐다. 한때 서남해안 일대를 수놓던 염전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일자리와 지역 공동체 역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천일염의 건강적 가치와 전통적 생산 방식이 재조명되면서, 염전은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천일염은 미네랄 함량이 풍부해 건강식품으로 주목받는다. 정제염이 단순히 염화나트륨만을 남기는 반면, 갯벌에서 햇볕과 바람으로 얻어낸 천일염은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한다. 이는 단순한 조미료의 기능을 넘어 건강을 지키는 자연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 등도 전통적 방식의 소금 생산을 문화적·생태적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의 천일염 산업이 단순한 지역 경제 차원을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라는 의미다.

또한 염전은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갯벌 위에 조성된 염전은 철새와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바닷물의 순환과 증발 과정 속에서 미세한 생물 다양성이 유지되며, 이는 곧 지역 생태계의 건강성과 직결된다. 일부 폐염전 지역은 생태관광지로 전환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결국 염전은 단순히 인간의 생산지일 뿐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적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지역 경제적 측면에서도 염전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서남해안의 신안, 무안, 영광 등은 오랫동안 소금의 주요 산지로, 수많은 농어촌 가구가 천일염 생산에 종사해 왔다. 최근에는 ‘염전 체험 관광’이 주목받으면서, 염전은 교육과 관광, 체험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소금을 긁어내며 전통 방식을 배우고, 도시민들이 농어촌의 삶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염전은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이어주는 생활의 현장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다시 염전을 주목해야 하는가. 첫째, 기후 위기 시대에 염전은 저에너지·친환경적 산업이다. 태양과 바람만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대표적 지속가능 산업이다. 둘째, 전통문화 보존의 가치가 있다. 염전은 단순히 소금을 얻는 공간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지식과 노동의 산물이다. 이를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문화적 뿌리를 물려주는 일이다. 셋째, 지역 균형 발전의 핵심 자산이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는 오늘날, 염전을 중심으로 한 농어촌 산업과 관광은 지역 경제의 자립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염전의 가치를 단순히 농업·어업의 연장선에서 볼 것이 아니라, 전략적 산업·문화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천일염의 우수성을 알리는 국가적 브랜드화, 염전과 연계한 생태관광 활성화, 전통적 생산 방식의 보존과 지원은 시급히 추진돼야 할 과제다. 또한 값싼 수입염과의 무분별한 경쟁 속에서 국내 천일염 산업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염전은 과거의 유산이자 미래의 자산이다. 소금을 통해 인류의 생명을 지켜온 이 땅의 염전은 단순한 밭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과 문화, 경제와 생태를 함께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우리는 지금, 소금밭에 비친 햇살 속에서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선 인류 공동의 가치를 읽어야 한다. 염전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정보신문 jbnews24@naver.com